한살림 운동은 생명운동입니다.

산업문명의 위기

인류가 자유, 평등, 진보의 깃발 아래 피와 땀을 흘리면서 이룩해 온 오늘날의 산업문명은 세계를 황폐화시키고, 모든 생명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또한 인간이 자연 지배의 도구로 사용했던 기계와 기술에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예속되어 버렸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론이고, 공산주의 사회도 인간이 기계와 기술에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산업문명은 생명을 소외시키는 체제이며, 본질적으로 반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반생태적이다. 또한 산업문명은 모든 것들을 대립, 투쟁하게 한다. 노동과 자본, 이성과 감성, 인간과 자연의 대립은 산업문명으로 인하여 생겨났다. 더우기 민족의 대립, 분단이라는 비극까지도 야기시켰다.

우리들은 산업문명으로 인하여 여러가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사회 경제 정치의 세계에서, 전 지구 규모의 생태계의 영역에서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물질적, 제도적인 위기일 뿐만 아니라 지적, 윤리적, 정신적 위기이며 인류사상 유례없는 규모와 긴박성을 지닌 위기, 바로 전인류와 지구상의 전생명의 파멸을 의미할 수도 있는 위기인 것이다. 오늘날 산업문명이 우리에게 가져온 위기는 다음과 같은 증후로 나타나고 있다.

  • 핵위협과 공포
  • 자연환경의 파괴
  • 자원고갈과 인구폭발
  • 문명병의 만연과 정신분열적 사회현상
  •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악순환
  • 중앙집권화된 거대 기술관료체제에 의한 통제와 지배
  • 낡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위기

핵공포와 환경오염, 암과 정신장해, 폭력과 범죄, 인플레이션과 불황, 자원 고갈과 인구폭발-산업문명이 바로 이러한 위기의 원천인 것이다. 이제야말로 산업문명에 의하여 구축된 세계질서와 그 기반이 되고 있는 세계관,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기계론적 모형의 이데올로기

산업문명의 기초는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 철학, 뉴톤 역학, 존 로크의 사회사상이 등장함으로써 자연 우주 인간이 기계론적 모델에 의해 설명된다. 기계론적 이데올로기가 전개되면서 서구의 합리주의 실증주의 산업주의는 사고의 편견을 가져왔다. 즉 직관적 지혜보다는 합리적 지식을, 통일보다는 대립을, 조화보다는 경쟁을 더 추구한다.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여러가지 불균형이 생겨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는 오늘날의 산업사회 전반에 산업문명을 옹호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로서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기계론적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은 모형에서 살펴볼 수 있다.

  • 과학만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
    분석과 실증을 통한 과학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인식의 길이라는 ‘과학지상 주의’ 학문과 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 실재를 이원론으로 분리해서 보는 존재론
    데카르트 등장 이래 이원론적 존래론은 모든 영역에 적용되면서,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철학으로 신봉되어 있다.
  • 물질과 우주를 기계모형으로 보는 고전역학
    이원론적인 존재론, 즉 환원주의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조차 기계론적 틀로 파악하게 하였다.
  • 생명현상을 유기적으로 보지 않는 요소론적 생물관
    생명과학이 해결할 수 없는 대부분의 문제는 생명을 요소론적으로 파악하는 비유기적이고 단편적인 접근에 그 원인이 있다.
  • 인간정신을 기계모형으로 보는 영혼없는 행동과학과 육체없는 정신분석 행동과학과 정신분석학
    그 방법과 관점에서는 큰 차이가 잇지만, 실제로는 의식을 기계론적으로 보는 동일한 이론적 기반 위에 서 있다.
  • 직선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이론
    지본주의이건 사회주의이건 간에 오늘날의 경제이론은 모두 직선적인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반생태적 자연관
    근대 이래 과학의 목표는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지식의 획득에 있었다. 그 결과 과학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자연을 인간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도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생산적으로 오인함으로서 반생태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기계의 원리와 질서를 가지고 생명인 인간과 자연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산업문명은 비록 합리성과 능률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한정된채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인 화석연료 없이는 작동될 수 없는 폐쇄적이고 고립된 기계장치에 불과하다. 기계란 엔트로피 법칙에 지배되는 죽음의 세계이다.
즉 산업문명은 생명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전일적 생명의 창조적 진화

  • 생명은 ‘자라는 것’이고 기계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계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자만, 생명은 자기조직화하는 힘을 갖고 있다.
  • 즉 생명은 생성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 생명은 부분의 유기적 ‘전체’이고 기계는 부품의 획일적 ‘집합’이다.
    생명은 부분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면서 부분이다. 이 상반된 두 경향은 상보적인 것으로서 균형을 유지하며 이 균형은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다.
  • 생명은 ‘유연한’ 질서이고 기계는 ‘경직된’ 통제이다.
    진화의 방향은 생명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조직화하고 진화해 간다.
  • 생명은 ‘자율적’으로 진화하고 기계는 ‘타율적’으로 운동한다.
    진화의 방향은 생명 자신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기조직화하고 진화해 간다.
  • 생명은 ‘개방된’ 체계이고 기계는 ‘폐쇄된’ 체계이다.
    생명은 신진대사라는 자기 갱신능력을 갖고 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은 자기 치유능력을 갖고있다. 그리고 거시적인 진화를 수행하고 있다.
  • 생명은 순환적인 ‘되먹임고리(feedback)’에 따라 활동하고 기계는 직선적인 ‘인과연쇄’에 따라 작동한다.
    생명에 있어서의 되먹임 기능은 생명의 위기를 창조적인 진화로 전환시킨다.
  • 생명은 ‘정신’이다.
    생명의 본질은 정신이다.

인간 정신은 자기보다 큰 생명인 공동체나 생태계의 질서에 참여하고 지구의 정신에 통합되며, 종국에 가서는 거룩한 우주의 마음과 합일하게 된다. 그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생명은 창조의 기쁨을 느낀다. 이 거룩한 생명이 바로 한울이다. 한울은 자기 실현을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생명 그 자체이다. 인간은 자기 안에 거룩한 우주의 마음, 즉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인간안에서 모셔진 우주생명

동양의 전통사상에서는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를 생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힌두교의 최고신을 지칭하는 브라만이라는 말은 생명, 운동, 성장, 진화를 의미한다. 불교에서도 모든 것은 생겼다가 유전, 변화하며 사멸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의 도교사상에서도 역시 모든 실재를 유동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았고 그 궁극의 원리를 ‘길’이라고 표현하였다.

우리 민족은 우주의 근원적 생명을 ‘한’이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한은 개체인 동시에 전체이고, 원심적 확산이면서 구심적인 수렴을 뜻하기도 한다. 한의 사상의 배후에는 유교, 불교, 도교의 본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 한의사상은 서세가 동점하는 근세에 와서 우리 민족이 봉건적 질곡과 외세의 억압에 신음하고 있을때 동학사상으로 우리들앞에 다시 위대한 모습을 나타낸다. 동학은 근본적으로 문명사 전체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뿌리에는 창조적 진화론에 입각한 강력한 생명의 사상이 있다.

우리 민족의 마음에 있는 한울님은 삼라만상 속에 충만하고 인간과 더불어 있는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그윽하고 인간과 더불어 있는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그윽하고 아득한 우주의 궁극적인 실재인 것이다. 한울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그 안에 동참하면서 나누어 받아 체험할 수 밖에 없는 한생명인 것이다. 동학은 이러한 한울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동학사상은 하늘과 사람과 물건이 다같이 ‘한생명’이라는 우주적인 자각에서 시작해서 우주의 생명을 모시고 키워 살림으로써 모든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체천의 도를 설파하였다.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 대하여 동학은 빛과 지혜와 희망이 될 것이다.

  • 사람은 물건과 더불어 다같이 공경해야 할 한울이다.
    동학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대하여 공경의 마음을 가짐으로서 자연과의 생태적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의 진화에 참여할 수 이싿고 말한다.
  • 사람은 자기 안에 한울을 모시고 있다.
    동학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은 모두 하울님이 되는 것이다.
  • 사람은 마땅히 한울을 길러야 한다.
    동학에서는 사람이 종자를 심어 그 생명을 기르는 것처럼 가지 안에 모셔 진 우수생명, 즉 한울님을 길어야 한다고 말한다.
  • ‘한 그릇의 밥’은 우주의 열매요 자연의 젖이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한울, 즉 우주생명을 키우기 위해 밥을 먹여야 한다. 그리고 그 밥 한 그릇에는 우주의 진리가 짓들여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과 인간의 협동으로 만들어진 큰 생명의 결실이다. 밥을 먹는 일은 자기 안에 모셔진 생명을 공경하는 일이다.
  • 사람은 한울, 즉 우주생명을 체현해야 한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소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과 외경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한울을 모시고 키우는 주체로서 한울님다운 도덕적, 사회적, 생태적 행위를 하여야 한다.
  • 개벽은 창조적 진화이다.
    생명이 생명답게 되기 위해서는 생명을 가두고 옮기고 나눔하는 죽임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생명의 질서를 창조하는 개벽이 필요하다. 인간과 우주는 서로 협력하고 동역함으로서 창조적 진화를 이룩해가는 것이고 진화의 역동적 과정을 통하여 우주와 인간이 통일되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창조적 진화는 우주의 개벽이고 우주의 진화는 인류의 개벽이 되는 것이다.
  • 불연기연은 창조적 진화의 논란이다.
    시간에 있어서의 ‘과거’와 ‘미래’라는 이 원론은 극복하기 위해서 진화의 시점이 필요하다.
    동학에서는 긍정과 부정의 대립이라는 이원론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해결을 ‘아니다’, ‘그렇다’의 불연기연이란 진화의 시각에서 찾으려고 했다.

우주는 태초의 폭발로부터 끊임없이 진화를 해 왔다. 그 진화는 한편에서는 ‘혼돈’을 향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고 한편에서는 ‘질서’를 향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 두 방향을 묶는 역동성이 바로 진화이다. 하나하나의 생명에 전우주의 진화과정이 모두 투영되어 있다. 그것을 의식하고 자각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이고, 인간은 자기 안에 한울, 즉 우주생명을 모시고 있다.

한살림

모든 문명은 발생, 성장, 쇠퇴, 소멸의 길을 걸어왔다. 역사의 이러한 흐름은 우주진화 과정의 일환으로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산업문명은 그 정점에 도달하고서는 바로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산업문명이 가져 온 기계의 질서는 모든 생명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새로운 변화, 새로운 진화의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날 위기의 상황 저변에서 부터 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소련 동구에서,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운동은 그 변화의 조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페레스트로이카로 대표되는 동 구 여러 나라의 민주화운동은 표면적으로는 서방세계의 생활양식과 물질적 풍요를 동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새로운 생명관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러한 물결이 구미에서 아시아로 이동하여 동아시아에 전통적으로 존재해 왔던 사상의 위대함, 깊이와 연결되어 참된 전환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

한반도의 비극은 산업문명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가 타율적으로 강요된 민족 분단의 비극이었다.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운동은 민족통일 뿐만 아니라 전인류, 전생태계, 전우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한살림’은 탄생하였다.

  • 한살림은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다.
    우리들은 자신이 우주 전체를 구성하는 생명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동시에 진화하는 생명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 한살림은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자신의 자유와 동시에 생태계에 대한 책임감이 요구되고 있다. 자구의 요구는 인간의 요구 이고, 인간의 권리도 또한 지구의 권리이다.
  • 한살림은 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이다.
  • 인간은 자연과의 균형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상실하였다. 오늘날 결핍된것은 물질적 안락이 아니라 공동체적 조화이다.
  • 한살림은 새로운 인식, 양식을 지향하는것 대한 생활문화운동이다.
    산업문명을 생명의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조하고 사회적으로 널리 보급해 가야 한다.
  • 한살림은 생명의 질서를 실현하는 사회실천활동이다.
    산업문명, 즉 반생태적, 반공동체적인 정치권련, 기술관료, 기업에 대한 생명의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 생명의 투쟁은 새로운 문명을 준비하는 창조적 활동이다.
  • 한살림은 자기실현을 위한 생활수양활동이다.
    생명의 세계관, 가치관을 실현하려는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의 모든 생명이 거대한 우주생명에 합일된다는 각성에서 출발한다. 그러한 도덕적 각성이야말로 사회실천 활동의 출발점이다.
  • 한살림은 새로운 시대, 세상을 창조하는 생명의 통일활동 이다.
    우리 민족의 역활은 고난과 시련의 역사를 새로운 역사창조의 원동력으로 전환시켜 인류진화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산업문명이 기초하는 기계의 사회문화모형은 모든것을 분할, 구속, 고립, 예속시키고 소외, 오염시키는 죽음의 틀이다. 인류의 본래의 생명의 질서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한살림’은 전우주, 전생태계, 전인류를 생각하면서 민족통일을 위한 실천적 활동을 수행하고, 민족통일을 생각하면서 생태적 균형, 사회정의, 자기실현의 길을 모색하려고 한다. 지금 바로 생명의 새로운 지평이 우리앞에 열리기 시작하고 있다.